1인 시위 100일, 새해에는 역사적 정의가 세워지기를

김용택·89년 해직교사 | 기사입력 2020/12/29 [10:29]
특집기획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1인 시위 100일, 새해에는 역사적 정의가 세워지기를
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김용택·89년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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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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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김용택(77) 선생님은 1989년 마산여상에서 해직되었다가 1994년 울산 일산중학교로 복직. 2007년 합포고등학교에서 퇴직하셨습니다. 전교조 경남지부장과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활동하셨고, 퇴직하신 뒤에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서로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교육의정상화를 꿈꾸다같은 책이 있습니다. 편집자주.  

 

지금 와서 원상회복추진을 요구하면 저 사람들 돈 때문에 저런 요구를 한다고 욕먹지 않을까요?”

20188월 울산광역시 학생수련원에서 열린 해직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에서 나온 얘기다. 30년이 지난 얘기를 당시 시점에서 명분도 없어 꺼낸다는 게 오해를 받거나 쑥스럽다는 얘기다. 오랜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은 주장에 다수가 동의해서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 1990년 2월에 열린 전교조 제3회 중앙위원회. 맨 앞줄 양복을 입고 자료집을 보고 있는 이가 김용택 퇴직교사이다.   © 교육희망 자료사진



감춰진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다. 이대로 덮어두면 훗날 사가들은 ‘89년 해직교사들은 빨갱이 물이든 과격한 교사라고 매도하지 않겠습니까? 해직교사원상회복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해직교사들은 민족, 민주, 인간화의 참교육을 위해 제자들을 위해 살신성인 정신으로 투쟁한 정의로운 교사라는 사실을 역사에 남겨야 합니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같은 해 1128일 국회 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신경민 당시 민주당의원 주최로 전교조와 원상회복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토론회도 열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해직교사의 법률적 지위는 어디까지 회복되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고, 이어 전교조 교사들이 나서서 토론회를 열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89년 해직교사 중 노인이 된 퇴직교사들이 길거리에 나서 투쟁을 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2020924, 나는 팻말을 들고 출근 시간인 오전 9시 세종시 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31년을 기다렸다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시켜라!”

 

▲ 거리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김용택 교사의 모습  © 김용택 퇴직교사 제공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더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어 나부터 1인 시위라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전교조 가입 후 해직된 후 온갖 싸움을 다했지만 1인 시위를 해 보기는 처음이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89년 전교조교사 대학살에 대해 40대 아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해직교사라는 얘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복직하면서 다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교조의 젊은 조합원들도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즈음은 조합원 연수를 잘하지 않은 것 같다. 최루탄 가스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도 조합원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초기 전교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이렇게 젊은 조합원들에게 전교조 역사에 대한 연수를 하지 않으면 89년 해직교사들의 원상회복 문제를 알리가 있겠는가? 89년 교사 대학살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겠는가?

 

‘89년 해직교사라니...? 횡단보도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저 노인이 교사인가?’, ‘원상회복이 뭐지?’...이런 표정들이 많았다. 그래도 버스 기사님들 중에는 가끔 손을 흔들어주며 엄지 척!’ 하고 지나가는 분들도 있었다. 또 승용차를 타고 가시는 분들 중에는 차를 천천히 몰면서 팻말에 적힌 글을 읽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노인이 서 있는 모습이 불쌍해서 그런지 아니면 해직교사 문제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젊은 여성 한 분은 며칠에 한 번씩 따뜻한 음료수를 사와서 손에 쥐어주며 수고하신다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늙은이가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장갑을 사주고 가는 사람, 곁에서 함께 서서 이야기를 건네며 함께 해주시는 분도 있다.

 

▲ 윤병선 전교조 원상회복특별위원장은 29일 오전 11시 반 경, 조지난달 29일 윤병선 전교조 원상회복특별위원장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89년 전교조 결성 등으로 해직된 교사들의 원상회복을 위한 조치를 담은 요구서를 전달했다.  시도교육감들은 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내기도 했다   ©김상정 기자

 

 

하루는 서울한성중학교에서 정년퇴임하셨다는 송윤옥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연세 많은 선생님이 아침마다 길거리에 서 계시는 모습에 맘이 편치 못하다며 함께 하고 싶다고 하셨다. 말씀은 고맙지만 1인 시위라는 게 계속 한자리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해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자기가 맡겠다고 해 함께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시작되면서 위원장 후보들이 수고한다면서 찾아와 격려하기도 했다. 

 

더 반가웠던 일은 춘천교육대학교 학생들이 찾아와 왜 1인 시위를 하게 됐는지 당시의 상황을 들어준 일과 김해 분성여고 졸업생인 이수경 씨가 해직교사 문제를 동영상으로 만들겠다며 아침 첫차로 김해에서 달려와 1인 시위를 하는 모습과 89년 해직 당시의 상황을 취재한 일이다.

 

얼마 전에는 동국대학교 1학년 학생이 89년 교사 대학살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찾아왔다. 자기 어머니가 89년에 고3이었는데, 그때 존경하던 선생님들이 해직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참교육을 받으셨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며 찾아온 것이다. 

 

89년 해직교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하나 둘 세상을 등지고 있다. 그동안 140명의 해직교사들이 타계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해직의 고통으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겹게 살고 있는 해직교사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달랑 민주화운동관련자 증서한 장 주고, 민주화보상법에 규정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런 나라가 민주주의나 역사적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11일이면 내가 1인 시위를 시작한지 꼭 100일을 맞으면서 2021년 새해를 시작한다. 그동안 전국 시도 지부와 지회에서 1인 시위에 동참하는 물결이 일어났고, 강득구 민주당 의원과 여야 113명 의원이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발의안에 서명하였다. 여러 시도 의회에서 지지 성명이 이어지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15명의 전국시도교육감들이 민주화운동 관련 교원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전교조 위원장과 원상회복추진위원회 대표들은 지난 129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대표를 만나 이번 회기에 반드시 특별법을 통과시켜주기를 바라는 면담을 하기도 했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대표와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윤병선 전교조 원상회복추진위원장 등은 해직교사 원상회복특별법 관련하여 10일 오후 5시경 면담을 했다.     ©김상정

 

2021 새해, 이제 국가는 32년 전에 국가폭력에 맞서 참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나섰던 해직교사들을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역사적 정의를 세우는 길이요, 해직교사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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