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 안에 빛나는 별을 만나다

- 박노해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느린걸음, 2020)를 읽고

황현정 · 홍천 화계초등학교 교사 | 기사입력 2020/12/18 [14:42]

서평/ 내 안에 빛나는 별을 만나다

- 박노해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느린걸음, 2020)를 읽고

황현정 · 홍천 화계초등학교 교사 | 입력 : 2020/12/18 [14:42]

여기, 눈부시게 파란 책이 있다. 푸른 빛의 소녀가(THE BLUE LIGHT GIRL)박노해 시 그림책, 파란 바탕에 흰 글씨가 또렷하다. 앞표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본다. 미끄럽지도 거칠지도 않은, 포근한 땅의 느낌이다. 책에 코를 대어본다. 속이 잘 여문 모과향인 것 같기도 하고, 물기 가득한 풀잎 내음 같기도 하다. 파란 책등을 지나 파란 뒤표지를 보니 이런 글이 있다. 

 

 

 

저 먼 행성에서 찾아온 푸른 빛의 소녀와

지구별 시인의 가슴 시린 그림 이야기

우리 모두는 별에서 온 아이들

네 안에는 별이 빛나고 있어

 

, 책을 펴기도 전에 벌써 하는 울림이 있다. 푸른 빛의 소녀를 얼른 만나고 싶어 빠르게 펼친다. 거기엔 또 하나의 회색빛 문, 푸른 빛의 소녀를 만나기 전에 차분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 같다. 곧이어 헌사가 나온다. “지구별의 아이들에게(To Planet Earth’s Children)”

 

환한 빛을 배경으로 초록의 누군가가 등장한다. 지구별을 찾아온 소녀인가보다. 소녀는 대뜸 이렇게 묻는다.

 

지구에서 좋은 게 뭐죠?”

 

 

 


 

 

소녀의 질문은 아주 오래전에 준비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질문을 하기 위해 지구별을 찾아온 건 아닐까? 그 질문을 받은 시인은 평온하고 그윽하게 답한다.

 

꽃과 나무요 

시와 예술과 감동이요 

선과 정의가 승리하는 거요 

사랑,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요

 

질문을 받은 시인도 대답을 아주 오래전에 준비한 것 같다.

 

이 그림책은 푸른 빛의 소녀와 지구별 시인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소녀의 질문과 시인의 대답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지구별에 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소녀가 손을 내밀면서 지금 나랑 같이 다른 행성으로 갈래요?’라고 묻는다. , 시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러시아 거장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의 그림 29점이 박노해 시인의 글을 만나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푸른 빛의 소녀시인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말레비치박노해의 대화이기도 하며, ‘’, 그리고 의 대화이기도 하다.

 

말레비치의 그림을 더 찾아보고 그를 삶을 따라가 보면서 박노해 시인이 왜 말레비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책에 담긴 말레비치의 그림을 오래 보고 있으면 시인이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또는 내가 나에게 던져야 하는) 물음을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안녕,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파란 조각달 아래 푸른 빛의 소녀가 마지막 말을 건네며 멀어진다. 다음 장면을 펼치면 소녀가 남기고 간 그림이 있다. 말레비치의 <Suprematism, 18th Construction>(1915)이다.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며 소녀와 시인이 나눈 대화를 다시 그려본다. 그리고 매일 밤, 푸른 빛의 소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이 그림책을 펼치고 소리 내어 읽어본다. 세상이 온통 깜깜한 밤, ‘내 안에 빛나는 별을 만나러 간다. 

 

 


* 덧붙임 하나

박노해 시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다시 읽으면서 이 그림책이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의 사랑 / 우리들의 분노 /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노동의 새벽중에서)

 

** 덧붙임 둘

 

말레비치의 삶과 그림, ‘백석의 삶과 문학을 함께 살펴보면서 예술을 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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