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던 학생의 유서... 현실은 참담했다

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박병섭·퇴직교사 | 기사입력 2020/12/09 [15:31]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던 학생의 유서... 현실은 참담했다

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박병섭·퇴직교사 | 입력 : 2020/12/09 [15:31]

박병섭(63) 교사는 1989년 고흥 포두중에서 해직된 뒤 1994년 복직 이후 2019년 전남 순천여고에서 퇴직하였다. 해직 기간에 지역 역사 알기 활동을 하였고, 복직 후 지금까지 고을역사배움터를 만들어 지역 역사 탐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전남역사교사모임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일제강점기 벌교지역의 교육운동 연구, 역사교사 박돌샘, 지역에서 희망을 찾다같은 책을 썼다. 편집자 주.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사교육과 졸업 후 육군 병장으로 군대 복무를 마치고, 20대 후반인 1983년 장흥여자고등학교로 정식 발령을 받았습니다. 학교 현장은 사범대학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딴판이었습니다. 1980년 졸업 이후 발령 적체 현상으로 잠깐 임시교사로 근무했던 봉래중학교에서는 볼 수 없던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 일제 강점기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학산 윤윤기 선생 관련 답사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박병섭 퇴직교사 제공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는 군대와 흡사했습니다. 5·18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의 회유책으로 학생 교복은 자율화했지만 정작 학교 운영은 전혀 자율화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교무회의가 열렸는데 교사들은 각 부장들이 전달하는 것을 빼곡이 적었다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반복해야 했습니다. 교감과 교장은 부장들이 얘기한 것을 재탕,삼탕했습니다. 각 교실 뒤편의 환경 정리도 똑같은 이름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유신 체제에서 실행된 교련 교육은 사라졌지만,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진실을 담아야 할 교과서는 독재 정부의 홍보물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교과서가 국정이었습니다. 특히 국민윤리와 국사, 국어 등은 국민정신을 함양한다는 취지로 독재 찬양과 노예교육을 지향했습니다. 국사 교과서 현대 편에서 전두환 정권을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기술한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교과서의 거짓을 함께 찾으며 진실을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은 숨죽이며 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우리 교과서는 거짓말 찾기 훈련을 하기에 참 좋은 교재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교사의 발언이 어떻게 문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수업 후 한참 동안은 걱정한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교사들을 부끄럽게, 아니 괴롭게 만든 것은 한 여중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쓴 긴 유서였습니다. 이처럼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강압적 훈육 문화에 학생들은 꿈을 잃고 생명까지도 버리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5·18 항쟁 이후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떨쳐내지 못했던 젊은 교사들은 참담한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절망으로 내모는 가해자라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교사들은 괴로운 마음으로 자살 학생을 위한 위령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 1988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자살학생 위령제 및 참교육실천 결의대회  © <참교육 한길로> 사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교사들이 단체를 만들어 의견을 모아 대안을 제시했지만 당시 정부는 움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왜곡과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1986년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한 교사도 징계하거나, 좌천시켰습니다. 정부가 교사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했다면 교사들은 교육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89년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던 것은 당시 정부였습니다.

 

 

노동은 신성하다면서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정부는 참여 교사를 교단에서 추방했습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에서 교원의 단결권까지 부정한 것은 극단의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전교조를 와해시키려고 은사님과 부모까지 동원하여 탈퇴 각서를 받아냈습니다. 더욱 46개월이나 해직교사의 복직 조치를 미룬 것도 너무 심한 처사였습니다.

 

전교조 결성 때 정부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며, 교직은 성직이므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고 국민들에게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선 교사들을 성직자는커녕 교육 전문가로도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성실한 노동자로도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국가 권력을 총동원하여 비방하고, 집회 현장에 백골단 경찰까지 투입하여 짓눌렀습니다. 더 나은 교육 활동을 펼치고자 교육민주화를 요구했던 선생님들의 착한 의지를 폭력으로 꺾었습니다.

 

해직 기간을 인정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분들이 계십니다. 일 하지 않았다고요? 우리는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빼앗긴 겁니다. 우리는 쫓겨나서도 교사의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해직교사들은 그 기간에도 끊임없이 교육을 고민했으며 실천했습니다. 저의 경우, 교사들이 학교로 출근할 때 전교조 사무실로 나갔고, 집에 오는 퇴근 시간은 대부분 밤 10시 넘어서였습니다. 주말이면 현장 교사들과 함께 연수를 하거나, 교육 정책의 대안 마련을 위한 회의를 비롯해 교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또 지역교육 발전을 위해 틈만 나면 학부모와 지역민을 만나서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모색하며 지역 역사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들이 했던 활동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울까? 내가 맡은 교과를 어떻게 하면 잘 가르쳐 볼까?’ 같은 것이었습니다. 학교 분회, 시군단위 지회, 시도 단위 지부, 전교조 전체가 펼치는 교육을 위한 자체 연구와 연수 활동도 어마어마합니다. 매년 겨울방학이면 참교육실천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조합원 교사 수천 명이 모여 주제별로, 교과별로 경험을 나눕니다. 이런 활동을 우리 언론인들이 취재하여 보도하면 좋으련만 진지하게 참관하고 보도하는 매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집회나 시위 사진만 열심히 찍어다 보도하지요.

 

 

▲ 1999년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고창 선운사에서 교과외 참교육실천연구사업 교사겨울연수가 열렸다. 학급운영, 클럽활동, 개별지도 등을 공동으로 실현하기 위한 연수에는 전국 13개 시도지부에서 120여명 교사가 참여했다.   © 교육희망 자료사진

 

 

1989년 해직교사들은 교육 관료들이 국가 권력의 압박이 두려워 침묵하고 있을 때 교육과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기에 온갖 희생도 감내했습니다. 더 열심히 한 다른 조합원 교사들에 견주면 부끄럽지만, 이런 전교조 활동에 참여하면서 가족에게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1987년 시골 중학교 교사에게 시집와서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버거울 판에 해직의 고통까지 겪게 했으니 제 안해한테는 너무 미안할 뿐입니다. 아이들이 초반에는 건강해서 병원이나 약국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충분히 먹이지 못하여 감기가 자주 걸려 마음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해직 기간 생활비가 너무 부족해서 쌀과 부식이라도 보태려고 농번기 때에는 아이 둘을 데리고 부모님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야 교사로서 양심을 지켜보겠다고, 작은 소명감 하나 때문에 해직을 감수했으니 어려운 생활을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한테는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야만적인 탄압으로 수많은 교육 가족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으니 국가는 마땅히 당시 국가 폭력에 대해 제 가족에게는 사죄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기 바랍니다.

 

당시 해직교사 중에서도 연장자라고 해서 전교조 지도부를 맡았다가 구속까지 되어 파면을 당하고, 퇴직 후에도 연금을 못 받거나 깎여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선배들의 상황은 원상회복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보여 줍니다. 인천의 신맹순 선배님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고물을 주워다 팔아왔고, 전남의 김영효 선배님은 건축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활동 과정에서 얻은 병으로 장수 시대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별세하신 140여 선생님들 가족의 아픈 마음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나라의 정의를 세우려면 정의를 위해 나선 이들을 지켜줘야 합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혼돈을 거듭하였던 것은 애국지사보다 친일파들이 득세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다 불이익을 당했던 분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전교조 활동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교육 민주화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 부분을 원상회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에 공헌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출발은 바로 전교조 해직교사의 원상회복입니다.

 

▲ 전남교육청 민주평화의길 답사 연수에서 농민운동가 박병두 선생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박병섭 퇴직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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