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박경이·89년 해직교사 | 기사입력 2020/12/03 [15:07]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연속 기고/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해야

박경이·89년 해직교사 | 입력 : 2020/12/03 [15:07]

1989년 충남당진여고에서 해직된 박경이 교사는엄마 꽃밭은 내가 가꿀게요』 , 천방지축 아이들 도서실에서 놀다』,『만화 학교에 오다저자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1981년 보령의 청라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나는 시골 아이들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참으로 행복했다. 철필로 긁고 등사판에 밀어 환호하며 함께 만든 학급신문을 교장이 금지했을 때 그 까닭을 몰랐다.

 

1985년 예산여고에서 교감이 직원회의 시간에 소리를 지르며 학급신문을 바닥에 팽개쳤을 때야 비로소 학교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을 제 삶의 주인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일이 아니라 복종하는 도구로 만드는 일임을 알았다. 교사는 정권 홍보와 유지의 기반이자 수단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를 길들이는 일을 명령받은 자임을 깨달으며 홍성YMCA 중등교육자협의회를 만들었고 교육에 대한 고민은 실천적으로 깊어졌다.  

 

▲ 부부가 함께 해직된 박경이·이인호 해직교사가 세종시 교육부 정문 앞에서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박경이 해직교사 제공

 

 

1989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은 비슷한 처지에서 미래교육을 걱정하던 교사들이 전국적으로 일시에 민족·민주교육참교육을 외쳤던 역사적 사건이다. 노조를 만들고 탈퇴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말에 따르면 수업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며 풍물·민속반을 운영하거나 학생·부모와 상담을 자주 하는 교사1527명을 교단에서 쫒아내면서 정권은 부끄러움 없는 야만성을 드러냈다.

 

고뇌 끝에 탈퇴각서를 쓰고 학교에 남은 교사들은 관리자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조 활동을 했으며 많은 교사들이 48개월 동안 후원금을 내어 해직당한 동료와 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틈 날 때마다 한 끼 밥과 물질로 마음을 더했던 시민·가족들의 따뜻한 지지 덕분에 해직 이후의 전교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교사·시민들이 전교조의 정당성과 해직 사건에 대해 끝까지 충실성을 보임으로써 합법화에 이르게 한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교육의 변화와 복직에 대한 희망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으므로 해직 이후 전교조 상근활동을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고 학교 안팎의 교사·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웠다. 해직 3년을 훌쩍 넘어서면서부터는 밤마다 내 책상이 없는 교무실로 출근하거나 텅 빈 교실에 들어가는 꿈을 꾸기도 했으니 1994, 학교에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컸다. 

 

원상복직이 아닌 신규임용의 굴욕적 형식이었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대단했다. 인정받지 못한 경력과 호봉 때문에 수시로 마주치는 불이익과 불편은 밀쳐내야 했다. 밀린 봉급을 받으면 잔치를 열겠다는 꿈은 점점 작아졌지만 내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남의 아이들과 힘차게 도서실에서 읽고 토론하는 모둠수업으로 자랑스럽고 신나던 날들이었다.

 

원상회복에 대한 확신이 옅어지는 동시에 종종 치솟는 갈망을 다스리며 수업에 자부심을 쏟았다. 해직은 그때 필요한 결단이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빚더미에 앉은 것도 아니며 먹고 살 만한데 뭘~, 가난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감상적 심리적 보상으로 충분한 듯했다. ‘교사다운소박한 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극적 용기로 인내했던 것이다.

 

해직과 신규임용 이후 수시로 반복되던 고통이 체념 위에 개별적 삶으로 닫혀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30년이 흘러야 했으니 그것은 정의의 차원에서 아직 열린 채로 있음이다. 국가의 응답을 통해 닫히되 실천의 지속성으로는 계속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원상회복은 지금의 내가 적극적 용기로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1989년 해직교사들이 교육부 앞에서 해직교사 조건없이 전원복직, 원상회복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희망> 자료사진

 

 

 

공포에 가깝도록 외경심을 일으키는 청산과 정지整地작업 없이는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알랭 바디우)새로운 장을 열어젖힐 수 없다. 어떤 진리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폐청산이 필요한 이유다. 다져진 땅 위로 자본의 전체주의를 넘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일이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원상회복 역시 그 역사성 가운데 있다. 선한 사람을 더 성공하게 만듦으로써 끝 모를 양극화 속에 신음하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가는 일이기도 하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정의의 실천을 망설일 때 가난한 소수자들의 몫은 더욱 작아질 뿐이다. 우리의 삶과 인간을 대하는 기준을 높이거나 더 낮아지지 않도록 하라는 정언명령이다.

 

떳떳하고 기쁜 마음으로 원상회복을 요구한다. 나라의 이름으로, 촛불시민혁명이 이룬 국회와 대통령의 목소리로 정당성 인정과 사과, 감사를 받고 싶다. 그 기쁨과 명예를 당시의 시민들, 동료교사들, 제자들, 내 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진정 나라가 있음을 뜨겁게 느끼기를 원한다. 이에 대한 국가의 정의로운 화답은 이기주의적 삶을 딛고 공동체를 위한 시민적 실천방향을 명시하게 될 터이다. 공동체와 대의를 위해 개인적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때 자신의 불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진정 자유로운 윤리적 실천의 용기를 내재화하는 사회적 신뢰의 판을 연연세세 잇게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해직당하는 일이 젊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면 지금 늙어가는 내가 할 일은 원상회복 요구다. ·우리는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잔치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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