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영주 교사

나를 성장하게 한 ‘조합원 총투표’

김상정 | 기사입력 2020/10/16 [18:40]

[인터뷰]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영주 교사

나를 성장하게 한 ‘조합원 총투표’

김상정 | 입력 : 2020/10/16 [18:40]

▲ 2020년 9월 25일 전교조 본부 4층 대회의실에서 이영주 교사가 2013년부터 올해까지 지난 7년 동안의 투쟁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 손균자 기자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계 탄압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2010년 규약시정명령을 했던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었고 그때부터 시작된 전교조 탄압은 박정권이 들어서면서 최정점을 찍었다. 2013년 조합원 총투표를 성사시켜, 압도적인 규약시정 반대를 이끌어냈고 2015년 민중총궐기를 성사시켰던, 그렇게 박근혜 정권의 탄압에 맞선 싸움의 맨 앞에 섰던 이는, 다름 아닌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그렇게 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교직을 잃었다. 2010년 전교조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 2013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이었고 2015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하면서 이명박근혜 정권과 이른바 맞짱을 뜬 이영주 교사.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고 천신만고 끝에 전교조 법외노조도 취소되었지만 그는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해직된 34명의 교사 중 유일하게 다시 교직을 잃은 교사가 됐다.

 

20209월 대법 판결 직후, ‘드디어 투쟁이 끝났구나, 이제 맘 편하게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7년 동안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늘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2013조합원 총투표는 정권에 맞서겠다는 선전포고였다9월 대대에서 조합원 총투표가 결정됐고 총투표 결과 투표 인원 59,828(투표율 80.96%) 68.59%가 규약시정을 반대했다. 법외노조 통보를 받고 나서 첫 전국 집회가 보신각 집회였다. 우리가 결정했고, 굴복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에 입은 웃고 눈은 울고 있었다. 서로를 포옹하고 다독이며 위로하면서 결의를 다지는 장이었다.

 

2014년 대한문 앞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탄압한 이 사안을 이후의 박근혜가 가장 후회하는 일로 만들겠다고 말을 했었다. 법외노조 투쟁을 하던 중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반드시 응징해야 하고 재발을 막아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게 민주노총 직선 1기 집행부의 사무총장이 된 이유고 집행부가 되자마자 민중총궐기를 기획하고 조직한 이유다.

 

2015년 민중총궐기 당일 13만 정도가 모였다. 그리고 민주노총 안에서의 수배 생활이 시작됐다. 집행부를 유지하는 것이 수배생활의 목표였다. 2017년 말에 서울구치소로 갔을 때 하루에 30분 땅을 밟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잎이 나는 과정을 보고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민주노총 안에서는 액자처럼 창틀이 있는 풍경만 보았는데 서울구치소는 창틀이 없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구치소라서 무엇보다도 침탈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20171217일에 체포되어, 1230일에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되었으니 공식적으로 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으로 구속한 노동자가 됐다. 박근혜정권에서 발부했던 체표영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집행된 것이다.

 

다시 해직 교사가 됐다. 복직하는 이들이 내가 다시 해고된 상황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충격도 받고 있지만 나에겐 예정된 수순이라 특별하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알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기쁘게 복직해야 할 분들이 미안해하시며 저 때문에 불편해 하셔서 죄송하다지금 나는 민중총궐기로 인한 징역형으로 공무원자격이 박탈되어서 다시 해고된 상황이다. 나는 복직을 하기 위해 사면복권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 광주항쟁도 그렇고 419혁명도 그렇고 89년의 전교조 투쟁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민중총궐기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으로 교사로서의 신분을 다시 획득해 나가는 게 법외노조 투쟁과 민중총궐기 투쟁해왔던 과정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많은 투쟁은 누군가가 먼저 선을 넘지 않고는 이 악법들은 개정되지 않는다. 악법들을 함께 개정해 나가는 운동에 연대해주시는 게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정년퇴임 6년 남았다. 그 기간 동안 우리의 투쟁의 정당성을 다시 찾고 정의를 바로 세우면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나에게 남은 6년은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조합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찾아서 참교육실천활동에 몰두하고 싶다. 그 중 하나가 학생들을 위한 노동교육 자료를 만드는 일이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는지, 안에서 아무리 참교육을 해도 사회는 인권을 주장할 수도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이다. 우리가 참교육을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는 졸업한 이후에도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교육을 안착시키는 작업이 나에게 남은 6년의 시간동안 하고자 하는 첫 번째 일이다

  

학교 안에서의 참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학교 밖에서의 참교육은 다양한 방면에서 진행이 가능하다. 학교 밖에서 이러한 참교육으로, 전교조 조합원으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해고자가 할 수 있는 참교육이 존재한다. 있는 곳이 어디든 참교육을 실천할 수 있고 학생들에게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모든 게 참교육이다. 학교 안에 참교육이 할 수 없는 빈틈들을 밖에서 메꿔내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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