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교육 바닥 드러난 오늘의 교실

장병순·부산동백초 | 기사입력 2020/10/13 [09:10]
참교육
학교를 새롭게 새롭게
학교 성교육 바닥 드러난 오늘의 교실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장병순·부산동백초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20/10/13 [09:1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느금마*녀"

 

 3년 전 어느 날, 담임교사가 패드립 메모를 찍은 사진을 쿨메신저로 보내왔다. 이 메모의 수신인은 만성질병을 앓고 있는 5학년 A학생. 오랜 질병으로 타인의 시선에 민감했고 조용하고 친구가 많지 않은 남학생이었다. 그런데 반의 몇몇이 A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A의 어머니를 향한 성적모욕을 쪽지로 보낸 것이었다. 행위 학생을 불러 상담한 결과 학업과 어른들에게 억눌리고 쌓인 분노를, 친구 없고 몸이 아파 대항할 가능성이 적은 A에게 투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성적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성 문제로 접근하거나 단순히 성교육의 제공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성을 혐오와 폭력의 도구로 삼아 분노를 약자에게 혐오 발언으로 가한 폭력은, 비틀어지고 부정의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닮은 교실사회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수업자료를 화면에 띄우려고 몸을 구부려 USB를 컴퓨터 본체에 넣으려는데 잘 안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 USB가 잘 안 끼워져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순간 교실 뒤편에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남학생 몇 명이 '끼운대' "끼운다고?""ㅋㅋㅋ" 라며 서로 웃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이었다. 농담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이 키득거리며 웃는 이유를 몰랐던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챘다. 당시에 나도 모르게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즈음 전교조에서 실시한 초등학생의 성의식 실태조사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의 30% 이상이 음란물을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사회 미디어를 통해 아동에게 유해한 콘텐츠가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지를 시사하는 것이다. 

 

 걸러지지 않는 성착취적 문화와 미디어 속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15시간 이상 성교육 실시라는 교육부의 양적 기준과 성교육 표준안이라는 질적 기준에 의지하여 학교 성교육을 실천하는 일은 언제나 위태롭다. 15시간 성교육은 관련 교과에서 성교육적 교육 요소를 연계한 계획일 뿐이고, 실제로 교사는 교과교육을 할 뿐이다. 보건교사에 의한 성교육은 교과수업으로 인정되지 않고, 계기교육 수준으로 여겨지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주변화되기 십상이다. 그나마 가장 의무화된 성폭력 예방교육은 아직도, 동의를 가르치는 가해 예방 교육보다 거부를 표현하게 하는 피해 예방 차원의 교육이 많다. 

 

 일상화된 성착취적 사회가 교재로 작용하는 환경에서, 미성년을 협박해 불법 촬영물을 제작 유포한 N번방 가해자의 상당수가 10대라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인 성교육이 아직도 시대와 학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학생이 스스로 자기 신체와 성적자기결정권을 책임 있게 행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지도 기회를 제공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성교육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비난하거나 조심스러워하기 바쁘고, 학생들은 배울 것이 없고 다 아는 이야기라고 외면하는 틈새에서 학교 성교육은 여전히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인간에 대한 차별과 혐오와 반인권을 떨쳐내고, 지속가능한 협력과 공존의 세계를 꿈꾸게 하는 성교육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성에 대해 성스럽거나 더럽고 부끄럽거나 둘 중 하나로 보는 이중적 성교육과는 결별해야 한다.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성적 무지를 권장하며 정보를 제한하는 성교육은 버려야 한다. 학생을 대상화하며 지도되어야 할 비주체로 간주하는 성교육에서 떠나야 한다. 

 

 대신 앞으로의 성교육은 학생이 몸의 결정을 통해 선택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교육은 자신의 삶과 공동체적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민을 키우는 민주주의 교육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사랑하고 돌보는 능력, 자신의 몸과 관계와 삶 속에서 존엄하고 건강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 다양한 관계(가족, 친구, 동료, 집단) 속에 평등과 존중을 실천하는 능력,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함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여성위원회 중심으로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꾸려 ‘포괄적성교육’을 공부하고 교육적 실천방안들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 여성위원회 주최로 전교조 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포괄적 성교육 강좌'에서 이명화 아하! 서울시립 청소년성문화센터 원장이 포괄적 성교육을 설명하고 있다.  © 김상정 기자

 

이 기사 좋아요
ⓒ 교육희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PHOTO News
메인사진
[만화] 돌고 도는 학교
메인사진
[만화] 새학기는 늘 새로워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