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았다 엎었다 교육계획…교사는 AI?

윤기자·경기 일산중 | 기사입력 2020/09/10 [15:02]

갈았다 엎었다 교육계획…교사는 AI?

윤기자·경기 일산중 | 입력 : 2020/09/10 [15:02]

 

 

 

오늘도 네이버 공문을 받았다. 826일부터 911일까지 고3을 제외하고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는 속보였다.

 

오늘 1학년 아이들이 등교해 수업을 하고 있는데 당장 내일부터 원격 수업을 실시하랍신다. 오늘은 등교 수업, 내일은 원격 수업? 미리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말만 떨어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들이 뭐든 척척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등교 수업도 온라인 수업도 절대 만만하지가 않다. 내일부터인 1학년과 3학년 두 개 학년의 원격수업 준비를 위해 오늘 하고 있는 등교 수업을 급히 마무리하고 각종 공문 처리를 끝낸 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여름 방학 전 2개 학년 동시 등교 일정에 맞춰 새로 짰던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을 다시 수정해야 하고, 2학기 평가 계획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니 당장 내일부터 어떤 수업 내용으로 2학기 진도를 나가야 할지 정할 수도 없다.

 

911일 이후 교육부가 또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11일 전까지 학교의 모든 결정은 일단 유보된다. 미리 준비하고 꼼꼼하게 계획을 수립해봤자 결국 두 번 세 번 다시 고쳐야 한다는 걸 지난 6개월 동안 배웠기 때문이다.

 

수업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예정된 학교 행사를 과연 치를 수는 있을지, 수행 평가는 어떻게 실시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십 시간의 회의를 거쳐 다시 1, 2, 3안을 미리 준비해 두지만 교육부는 또 다른 안으로 우리의 뒷통수를 칠 것이다.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학교 현장의 의견을 물어보거나 여기저기 의견 조율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급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노라고 교육부는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리 원격 수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와 목소리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가 여론에 떠밀려 급박하게 결정하고 준비도 없이 막무가내로 원격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 다시 오리무중, 전면 백지 상태가 된 상황에서 내일 아침 915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5차시 분량의 하루 수업 영상을 업로드 하기 위해 퇴근 후 일주일간의 수업 내용을 '대충' 구성한 뒤 밤을 꼬박 새워 영상을 편집하고 제작해야 한다.

 

당장 내일부터 전면 원격 수업이 시작되는데 전날 오후에야 학교로 공문이 발송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기어이 말이 되게 만드는 교사들은 초능력 인간 어벤져스라도 되는 것일까?

 

지난 3월부터 학교는 매 순간 혼란의 연속이었다. 생전 처음인 원격 수업 준비로만으로도 벅찬데 몇 시간씩 대책 회의를 하며 교육과정을 새로 수립하고 학사 일정을 짜고 그 상황에서 학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들을 모색해 결정해 두면 뜬금없는 교육부 발표로 모든 걸 다 뒤엎어야만 했다. 8, 9번 이상 교육과정을 새로 고치고 등교 수업 일정을 짜고 수업 일수와 학사 일정을 정비하고 그에 따른 일정 변경을 가정통신문으로 내보내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교육 과정과 학사 일정이 변경되니 각종 계획서도 수십 번씩 수정이 불가피했다. 계획서 결재 후 재결재를 받는 과정들이 반복되었고 예정됐던 강의와 행사들을 취소했다가 섭외하고 다시 취소했다 섭외하는 바보 같은 일들이 몇 번씩 반복되었다. 특히 평가 계획과 진도표는 교육부의 방침이 결정될 때까지 수 십 번 고쳐 내야 했는데 결국 업무 담당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교육부의 정확한 지침이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노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교육부와 방역 당국의 지침이 바뀔 때마다 학교는 크게 요동쳤다. 학교가 미리 준비한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수업 방식과 평가 기준, 학사 일정이 180도로 달라졌지만 그 누구도 교사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배려해주지 않았다. 교육 현장 가장 낮은 곳에서 가까스로 공교육을 붙들고 있는 교사들은 이번에도 모든 정보로부터 소외되었다. 학교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언론 보도 전에 가이드 라인이라도 알려달라는 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메신저로라도 '속보가 뜰 예정인데 이런 급박함 때문에 이렇게 실시하고자 하니 사전 양해 바란다.'와 같은 사소하고 기본적인 배려조차 없다. 왜 가장 중요한 교육 정보를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가장 나중에 '속보'로 전해 들어야 하는 걸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우리 교육은 언제까지 학교와 교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

 

교사는 명령을 내리면 시키는 대로 바로 실행에 옮기는 인공지능 컴퓨터도 아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초능력자도 아니다. 우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교육부는 탁상공론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그에 따른 장기 계획을 사전에 수립해야 한다. 더 이상 네이버, 다음 공문으로 교육 정책을 통보받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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