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프로세스의 끝 '사필귀정'

2020년 9월 3일, 나의 하루

 조창익 · 전 전교조 위원장 | 기사입력 2020/09/10 [12:33]

기나긴 프로세스의 끝 '사필귀정'

2020년 9월 3일, 나의 하루

 조창익 · 전 전교조 위원장 | 입력 : 2020/09/10 [12:33]

 9월 3일 오후 2시,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였다. 15분여, 짤막하지만 고통스럽게 기다려왔던 세월이 응축된 아주 기나긴 시간이었다. 승리였다. 우리가 해냈다. 투쟁 현장에서 외쳤던 우리들의 논리와 주장이 대법원장의 입을 통해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우리 투쟁의 역사적 정당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리라. 31년 전교조 투쟁의 역사가 그러했듯 부당한 국가폭력에 맞선 우리의 투쟁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경향 각지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고 위로와 축하 메시지가 당도하였다.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기쁜 마음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7년 세월, 법외노조 이름으로 회복하기 힘든 피해와 빼앗겨버린 시간을 되찾는 싸움을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의가 동시에 생겨나고 있었다. 

 

 

 

 기실 지난 7년은 거리의 세월이었다. 사철을 가로지르는 수백 수천 일 광화문, 청와대의 천막 노숙 농성과 일인 시위의 나날들, 삼보일배, 삼천 배, 오체투지! 광장에 쏟아부은 땀과 눈물, 길바닥에 흩날리는 수 없는 삭발, 목숨을 건 반복되는 단식 투쟁! 89년 명동성당 단식 때처럼 정말이지 그때 나는 이대로 죽으리라는 생각까지 했다. 

 

 우리가 이를 악물고 버텨낸 힘은 우리의 선택과 역사의 정방향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동지에 대한 신뢰였다. 80이 넘고 90에 다가서는 고령의 선배 동지들이 '청와대 안에 있는 제자들을 잘 못 가르쳤다.'며 참회의 고백 속에서 진행된 세종문화회관 앞 삭발 장면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내년 2월이 정년이다. 사실 복직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년 전에 교단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멀찌감치 미루어놓은 약속같이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조희주, 원영만, 장혜옥, 김재석 등 해직으로 정년을 맞이한 선배 동지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새남터의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피를 철철 흘리며 교단을 떠나리라. 하지만 역사의 교단에서 지지 않는 태양처럼 참교육 참세상의 터전을 그저 묵묵히 지켜 내리라 그렇게 다짐하곤 했었다. 

 

 나이 서른 살의 첫 번째 해직, 94년 복직은 설레고 참교육 열정으로 가슴 떨렸다. 이번에 정년을 몇 달 앞둔 나의 복직은 조금은 슬프고 두렵기까지 하다. 나의 열정을 풀어헤칠 공간도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나 이제 돌아가리라. 참교육 첫 마음으로 쓰러진 자리 그곳에서 다시 일어서리라. 

 

 대법원의 판결문은 전교조 재합법화와 더불어 교육노동운동의 전진을 알리는 기념비적 승전보였다. 한편으로 그것은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에 의한 국정농단, 사법농단으로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인 전교조 법외노조화 프로젝트에 수반된 국가폭력에 대한 사법적 참회록이자 반성문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전교조 판결로 이제 정의의 여신상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있는 명분을 하나 얻게 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행정부와 청와대는 촛불을 기망하고 끝내 대법 판결 뒤에 몸을 숨긴 채 전 정권의 부당한 탄압에 가세하였으며 수차례의 기회를 발로 걷어차 냄으로써 정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정부의 상징으로 노동의 역사에 남겨졌다. 제아무리 노동부가 법외노조 취소통보를 즉각적으로 한다 한들, 교육부의 후속 조치 취소가 전광석화처럼 진행된다 한들 역사에 화인처럼 기록된 오점을 씻어내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벌써 개악된 노동악법, 교육악법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투쟁이 코앞에 던져져 있다. 자본이 짓이겨놓은 노동의 대지, 먼지 풀풀 날리는 거리에서 최후의 척탄병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어느 투사의 결의를 가슴에 품고 참교육 참세상 향해 나 걸어가리라. 온전한 노동 3권, 정치기본권을 향유하는 그 날까지 교육해방, 노동해방의 그 날까지 어찌 팍팍한 발걸음을 멈출 수가 있겠는가? 우리의 '기나긴 프로세스'는 끝나지 않았다. 교육과 노동이 제자리에 자리 잡는 날, 비로소 그 날이 우리의 '사필귀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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