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N번방 취재, 그 뒷이야기

김완·한겨레 신문 사회부 기자 | 기사입력 2020/06/05 [11:35]

[기고] N번방 취재, 그 뒷이야기

김완·한겨레 신문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06/05 [11:35]

'인천의 한 고등학생이 한국 최대 규모의 텔레그램 링크 공유방 그룹의 방장(약 9천명)이며 동시에 아동 포르노를 공유하는 그룹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짧은 제보였다. 지난해 11월 11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6개월 동안 후속 보도를 이어오고 있는 <한겨레>의 '텔레그램에서 퍼지는 성착취' 보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중에 알았다. 그 제보가 다른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운영자의 저격, 이른바 '견제질'이라는 것을. 첫 보도를 할 때는 'n번방'도 '박사방'도 몰랐다. 다만, 6~7매의 짧은 사건 기사, 한 번의 보도로 끝낼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세계는 더 잔혹했다. 바깥 세계와 완전히 차단됐다는 믿음 속에서,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리라는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그야말로 모든 '인류애'를 져버린 현장이었다.

▲ 전교조는 지난 달 28일 N번방과 일베, 그리고 우리의 교육은? 토론회를 열었다.  © 손균자 기자

 

 박사방의 범죄는 단순히 함께 음란물을 공유받아 보는 것이 아니다. 노예녀로 불리는 피해자는 구체적인 신상이 특정된다. 박사방의 가입자들은 그 구체적인 누군가의 삶과 인격이 파괴되는 상황을 함께 쫓으며 실시간 실없이 까불거린다. 끝내 모든 것이 파괴된 피해자가 기기묘묘한 동영상을 인증하면 하나의 범죄가 끝난다. '인간 사냥'을 마쳤다는 범죄의 쾌감을 나누고 쉴 틈 없이 또 다른 피해자를 갈구한다. 취재 내내 피해자가 등장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는 표현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절망감이 젖었다.


 박사는 협박으로 찍은 영상을 금액에 따라 입장 자격이 나뉜 대화방들에 유포하며 수익을 올렸다. 박사는 그 결제 수단을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폐로 하며 범죄 가담자들에게 안정감까지 제공했다. 박사의 세계에서 여성은 '노예'였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존재했다. 언제든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대상이었고, 무엇이라도 착취할 수 있는 사물이었다.


 첫 보도를 하고 바로 신상이 털렸다. 가족사진이 텔레그램 성 착취방들에 내걸렸다. 박사는 '김완 기자의 신상을 털어오면 고액방에 입장시켜주고, 노예 명령권을 주겠다'는 프로모션까지 내걸었다. 지금은 구속된 박사방 관리자 태평양은 '한겨레 앞에 직원을 대기시켜 미행하면 집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협박했다. 취재를 공조했던 경찰 관계자는 신변 보호를 받으라고 권했다. 24시간 경찰과 연락할 수 있는 전자시계를 차곤 더 단단한 기사를 내놓자고 주문 아닌 주문을 걸었다.


 취재를 위해 가상 번호로 텔레그램 아이디를 만들고, 이러 저러한 성착취방에 처음 입장했을 때 받은 느낌을 기억한다. 울렁거림이었다. 대화방에 모여 있는 이들이 올리는 동영상과 이미지, 그리고 여성을 두고 나누는 대화에는 윤리 감각이 없었다. 한 개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행동 규범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왜 이러는 걸까를 생각했다. 지하철에 앉아있는 저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방들의 누군가는 아닐까 싶을 때는 혼자 고개를 저으며 이러지 말아야지 놀라곤 했다.


 그 과정에서 천천히 깨달았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박사로 대변되는 누군가가 악마여서 벌어지는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모두 함께 모여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다. 나부터 그랬다. 한국 사회 남성 모두가 정도는 다르지만 어릴 때부터 성착취 문화를 익숙하게 접하고 거부감 없이 자라왔다. 그 토대에서 우리가 살아왔고 박사방이, n번방이 생겨났다.


 그 방들을 들여다보며 울적할 때, 혼자 생각하곤 했다. 이들에게 '감각'을 남겨줘야겠다고. 젊을 때 잠깐 거기서 그랬지만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공유하면, 훗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할지.


 이제 박사는 검거됐다. 하지만 여전히 성노예 동영상, 성착취물을 기다리는 '평범한' 관전자들은 흩어지지 않고 '링크 구걸'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조주빈들은 오늘도 생겨난다. '조주빈류'들이 잡혔을 뿐, 자신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상을 제작한 것이 아니니 단순 관람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분리한다. 


 그래서 언론과 수사기관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언론과 수사기관만 뒤늦게 알았을 뿐 오래전부터 온라인 성착취 범죄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계속되어왔고 정말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겨레>가 취재하기 전부터 이미 무수한 남성들이 'n번방'을 알고 있었고, 어떤 여성들은 치를 떨었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끊어내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 그리고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범죄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주빈을 비롯한 주범자들을 당연히 엄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그 방에 가입했던 회원들을 모두 확실히 처벌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예방의 시작이다. 이 행위가 범죄이고, 사회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는 걸 26만이 아니라 260만 명이더라도 처벌해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800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조주빈에 대한 엄벌과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요구했다. 결국, 박사를 잡은 힘은 이 문제를 계속 공론화했던 젊은 여성들의 힘이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했던 젊은 여성들의 간절함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직시하고 부디 이번부터는 제대로 된 응답을 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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