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 정년을 앞둔 해직교사 이을재 선생님을 만나다

교직 경력의 절반을 해고자로 살아도 두렵진 않아

박세영 전교조 해고자원직복직특별위원회 선전국장 | 기사입력 2020/04/23 [13:28]

내년 8월 정년을 앞둔 해직교사 이을재 선생님을 만나다

교직 경력의 절반을 해고자로 살아도 두렵진 않아

박세영 전교조 해고자원직복직특별위원회 선전국장 | 입력 : 2020/04/23 [13:28]

  © 복직이 안될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고, 곧 될거라는 생각으로 생활하니 고통스럽지 않다는 이을재 선생님 © 운영자


세 번이나 해직되셨는데, 전교조에서 참 독보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 해직 되신 분들이 더 계시죠. 저는 87, 89, 다시 2004년 상문고 사태로 해직됐어요.

86년에 교육민주화선언을 했는데 그해 12월에 징계위에 회부되고, 871월에 해직이 됐죠. 그러고서 884월에, 13개월만에 복직이 됐죠. 너무나 운이 좋은거죠. 그러니까 해직되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유전자가 있어요. 왜냐하면 금방 복직될 건데, 이런게 내 안에 있어요. 한번 만들어진 유전자가 잘 파괴가 안돼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는거죠.

두 번째는 전교조 결성때이고, 세 번째는 상문고 사안인데, 20001월 상문고 재단 퇴진을 외치며 교육청 점거농성을 했어요. 2004년에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판결이 나서 집행유예를 받아 당연퇴직이 된거죠. 올해 17년째가 되네요.

89년에는 5년이 안되서 복직됐으니까, 81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39년동안, 해직기간만 23.

해직기간에 감옥을 다녀와서, 사실상 학교에 있었으면 다섯 번 해직된 거라 볼 수도 있죠.

 

교사였다가 해고자로 사는 이 삶에 적응이 잘 되셨어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내 길을 만들어갔다기보다 상황이 던져진 것이지만. 적응이 잘 됐다고 봐야죠.

대학교 졸업하면서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대학교 다니는 동안 당시 구로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야학이라는 것을 했어요. 중학교를 중퇴했거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공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이었죠. 교회에서 야학을 하다가 활동이 자유롭지 않아서, 구로공단으로 옮겼어요. 개미방이라고 사방 2m 되는 공간을 얻어서 했어요. 교과 과목도 가르쳤지만, 노동조합이나 노동법을 주로 가르쳤던 거 같아요. 야학에서 교장도 했고요

그런 시간 때문인지, 졸업하고 교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컸어요. 결혼할 때도 아내에게, ‘해직될 수 있어, 감옥에도 갈거야.’, 미리 다 얘기했기 때문에, 지금도 미안하지 않아요. 아내도 놀랍다거나 불만일 수가 없는 거죠.

운동을 하면서 해직도 안되고, 감옥도 안 간다면 놀부 심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라면 애시당초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다만 해직기간 동안 힘든 것은, 나는 나름대로 교육운동을 위해서 해직이 됐는데, 한번씩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에요. ‘조합비가 아깝다. 해고자들은 일 제대로 하나.’ 한번씩 이런 얘기들이 나오니까, 욕을 안먹기 위해서 열심히 일 해야지, 이런 부담이 있죠. 일부 조합원만 그렇다면 괜찮을텐데,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논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싶을 때는 굉장히 속이 쓰리죠. 그런데 어느새 해고자들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해고자에게는 복직투쟁이 가장 우선이고, 조직은 해고자들이 빨리 복직될 수 있도록 나서야 하는 거죠.

 

또 하나는 좀 서글픈 얘기인데. 해고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조직의 바람이 잘 맞아 떨어지면 좋은데 해고자의 경우는 잘 안 맞아 떨어질 가능성이 많죠. 여기에 해직자의 비애가 있죠. 해고자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얘기죠.

 

해고기간동안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최근에는 교권상담 업무를 맡고 있어요. 안한 거 없이 거의 다 해본 거 같아요. 서울지부 사무처장도 했고참실위원장(참교육실장),  편집실장조직국장대외협력업무 등. 참실위원장 할 때는 욕심을 내서, 교과운동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애를 썼었죠.

2013, 2014년에는 서울지부 CMS전환 작업을 했는데, 서울 조합원들 대부분의 정보입력을 제가 한 거라고 봐야죠.

 

학교로 돌아가면 꼭 해보고 싶은 일, 해직으로 못다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지금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학생들이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옛날에는 그게 학생 의식화좌경선동이라 했지만, 학생들이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기 주장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자는 거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학생들의 권리를 학생들 스스로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요.

 

실제 80년대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활발했어요. 876월 항쟁 즈음에 직선제 학생회 운동이라는 영역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88년 즈음에는 300-400명이 모여 경희대에서 토론회도 했었구요. 그랬는데, 89년 전교조가 뜨면서, 좌경, 용공 의식화 공격을 받다보니, 사실상 학생운동이 박멸됐다고 볼 수 있는거죠.

 

후배 해고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저는 여태까지 복직이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곧 될 거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그동안 많은 인터뷰에서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했지만, 굳이 내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를 찾아보니까, 제대로 싸움을 해보고 싶어서에요.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서 해고자의 삶은 굉장히 자랑스럽죠. 그러나, 교단을 박탈당한, 수동적으로 박탈당했다는, 박탈감은 있죠.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투쟁이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고,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내 살아 생전에 다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적당한이라는 표현이 나쁜 표현일 수 있는데, 어떤 시기 어떤 순간에 대중이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지점에서 투쟁의 성과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낚아채는 것을 망설이게 되면, 높은 이상만을 얘기하다 보면, 대중과 멀어져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생기는 것이겠죠. 늘 고민은 누가 대중과 함께 할 것이냐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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