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9년 전교조가입 박동수 교사 - 89년생 조합원 김미란 교사

강성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5/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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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89년 전교조가입 박동수 교사 - 89년생 조합원 김미란 교사
노동자? 성직자? "좋은 선생님이고 싶다"
강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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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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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성직자? "좋은 선생님이고 싶다"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조합원과와 89년생 조합원이 만났다.  © 손균자 기자

 

"○○○ 선생님 아세요?"

 박동수 경기 성남동중 교사(박샘)의 질문에 김미란 경기 행신고 교사(김샘)는 "제가 분회 활동만 해서 잘 모른다."고 답했다. 비슷한 질문과 답이 두어 번 더 이어졌다. 박샘이 전화로 김샘 소속 지회장의 이름을 수소문해 '□□□ 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김샘은 '분회 활동만 해서 죄송하다.'며 크게 웃었다.


 경기 성남과 일산의 가운데쯤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지난달 29일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부터 조합원이었던 박샘과 1989년생 전교조 조합원 김샘을 만났다. 전교조 1세대 교사와 2030 조합원의 만남에 대한 호기심이 그 시작이었다. 세 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대화에서 확인한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서로에게 갖는 의미의 차이였다. 하지만 두 교사의 전교조에 대한 애정은 다르지 않았다.


 김샘은 지회에서 진행한 신규교사 연수에서 전교조를 처음 접했다. '내년 연수 진행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제안에는 'yes', 전교조 가입 권유에는 'no'라 답했다. 하지만 교직 2년 차인 2014년에 조합원이 되었다. '학년 부장'을 찾는 전화를 받고 학교를 헤매던 중 한 교실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늘 열심히 하는, 멋있는, 배우고 싶은 선생님들이 다 모여 있었다. 분회 모임이었다. '선생님들 보고 일단 가입하고 아니면 말자.'는 마음으로 가입을 결정했다.


 1989년 당시 경기지부 정책실장이었던 박샘은 경기 풍생고에서 해직되었다. 스물여덟 살. 3남 5녀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빨갱이'라는 교감의 전화를 받고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학교에 찾아온 아버지. 함께 온 어머니는 끝내 쓰러지셨다. 부당징계 저지를 외치는 제자들을 뒤로하고 그는 1500명 해직교사 중 1인이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제가 잘못 온 것 같다."며 난감해하던 김샘에게 박샘은 "그저 시대가 그랬다."고 말했다.

 일산 행신고 김미란 교사   © 손균자 기자

 

 복직 이후에는 민주적 인사위원회를 꾸리고 학부모를 조직해 학교운영위원회에 함께하며 학교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학교를 이동할 때면 소문이 먼저 와 있는 일이 많았다. 올해 부임한 이 학교에서는 어느덧 나이가 교장 다음이다. 나 홀로 조합원인 그는 아이들 이름을 외우듯 학교 구성원들의 얼굴을 익혔다. 느낌 탓인지 젊은 선생님들과는 아직 가까워지지 못했고 코로나 19로 인해 만남이 쉽지 않다며 웃었다.


 "조합원이라고 하면 '왜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는 김샘에게 전교조는 '훌륭한 교사가 되어야 할 것 같은', '무거운' 무언가이다. 신규교사 연수 당시 전교조가 나눠준 책자 속 '아이들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줬나요?', '얼마나 웃어줬나요?' 등의 질문이 마음에 박혔다. 그는 '전교조스럽지 않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고 했지만, 기사에 쓰지 않기로 하고 풀어낸 학교 에피소드를 들으며 우리는 '전교조네!'를 외쳤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전교조가 복무 관련 교섭한 내용들이 있잖아요. 그걸 잘 모르는 친구들이 '전교조는 뭐하냐'고 할 때 화나죠. 전교조가 교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정! 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기도 한 교사들에게 '투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모든 사안에 진보적이어야 할 것 같은 정치색 등은 부담스럽죠." 

 

 김샘은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정치적인 이미지를 조합원 가입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성남동중 박동수 교사     © 손균자 기자

 

 박샘은 "전교조만 있던 자리에 교원단체들이 생겨났고 사안별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샘이 언급한 전교조에 느끼는 부담 등 현실적 고민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라는 이름으로 교육계 전반을 아우르며 폭넓게 연대하던 방식과는 달라 그 부분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교육을 넘어 사회 전반의 변화를 꾀한 전교조 운동의 시작을 함께했던 그였다.


 "전교조는 노동조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사회 문제 전반에 관심을 갖는, 교사 성직자관에 더 부합하는 선생님들이 모인 것 같아요."


 오랜 대화 끝에 김샘이 박샘에게 말했다. 젊은 교사들은 교사를 성직자가 아닌 노동자라 생각한다고. 학교와 삶은 분리되어 있다고 여긴다. 학교 안에서는 아이들과 최선을 다해 만나지만 개인 SNS까지 찾아오는 것은 달갑지 않다. 휴대전화 번호도 개인용과 업무용 두 개를 사용한다. '스승'이기보다는 '좋은 교사, 좋은 어른'이고 싶다고 했다. 동료 교사들과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학생 이야기'를 나눈다. 전교조는 교사들의 노조이고, 교사의 이익집단인데 왜 다른 노조 조합장을 뽑는 투표(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참여해야 하나, 왜 저 노동조합 집회에 함께하나 의아할 때도 있다고 했다.


 박샘은 "지금은 혁신교육을 말하지만 결성 당시 전교조가 내건 민족 · 민주 · 인간화 교육의 가치는 사회 전반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전교조 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스물 여덟의 젊은 해직교사는 어른 대접을 받았고 자긍심도 컸다. 각성한 제자들은 학생 운동이나 노동 운동에 뛰어 들었다. 원상회복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40여명의 해직교사는 '살아남은 자의 과제'로 남았다"고 했다. '저 노동조합 집회'에 우리 제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말에 김샘의 눈이 커졌다.


 "왜 함께해서 전교조가 욕을 먹나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 안에 내 제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봐서 놀랐다."


 하지만 이내 김샘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포용적일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박샘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연대, 전교조를 권익집단으로 볼 것인지 등의 문제에 입장 차가 크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혼잣말처럼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고도 했다.

 

 해직됐을 당시의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김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를 지나 "이제 전교조는 이 친구들이 키워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고.

 김샘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열정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렵다."고 했다. 박샘을 보며 '좋은 선생은 못 되어도 나쁜 어른은 되지 말자'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됐다고.


 생각에 잠긴 듯한 김샘에게 '전교조가 대중 조직이 되긴 어려울 것 같냐'고 물었다.
 "그렇지는 않은데…… 교사들은 '불법'이란 이미지에 거부감이 있는건 법외노조가 취소되면 자연스레 해결되고, 조합비 연말정산도 다시 될 테니 괜찮을 거 같다. 전교조를 드러내기 보다는 연수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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