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4시 16분 광화문에 울려 퍼진 ‘경적’

노란차량행진 그리고 다시 찾은 사고 해역

김상정 | 기사입력 2020/04/13 [13:50]

11일, 4시 16분 광화문에 울려 퍼진 ‘경적’

노란차량행진 그리고 다시 찾은 사고 해역

김상정 | 입력 : 2020/04/13 [13:50]

2014416일 세월호 참사, 6년이 흘렀다. 일곱 번째 마주하는 4월이지만, ‘진상규명, 책임자처벌구호는 바뀌지 않았다. 참사일을 닷새 앞둔 411,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매년 꽃은 활짝 피었고 꽃잎은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 4월 11일, 세울호 참사 6주기 공동행동, 진실을 향해 달리는 노란차량행진 집결장소인 안산 화랑유원제 제 3주차장 입구     ⓒ 김상정

 

익숙했던 풍경인 합동분향소 대신 널찍한 주차장이 4.16 세월호 참사 6주기 공동행동 노란 차량 행진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맞이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랑유원지 하늘을 수놓은 벚꽃잎은 들어서는 차량들 위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다시 바람을 타고 허공을 떠돈다. 하늘 위를 나는 것은 비단 꽃잎만이 아니었다. 드높이 띄워진 드론은 노량차량행진에 참여하는 차량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 차량행진이 시작되는 오후 1시에 가까워지자 안산화랑유원지 주차장에는 200대의 차량이 들어찼다.     ⓒ 김상정


어느새 주차장에 200대의 차량이 들어찼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발열체크를 하고, 차량에 피켓과 깃발을 부착한다. 200대의 차량 정면에는 진실을 향해 달리는 노란차량행진 진상규명, 생명안전, 한 걸음 더’”라는 구호가, 측면에는 세월호 희생자, 피해자 모독, 이제 그만!”, “검찰특별수사단, 세월호 재수사 제대로 하라!”, “안전사회로 가는 디딤돌, 416생명안전공원 건설하라라는 구호가 붙었다. 코로나19가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이하는 화랑유원지 풍경을 이렇게 바꿔놨다. 봄 하늘은 맑았고, 봄 햇살은 여전히 따스했으나, 봄바람은 유독 세찼다. 

 

▲ 지나가는 길 위에 전교조임을 알리며 열심히 운행중인 전교조 차량도 노란차량행진 대열에 함께 했다.     ⓒ 김상정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은 전교조로고가 새겨진 승위차의 운전대를 잡고 행진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SNS에 짧은 영상을 통해 함께 마음을 모아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 교훈을 거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 차량행진 시작에 앞서 묵념시간을 가졌다. 함께 묵념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 김상정

 

▲ 묵념을 마치고, 곧이어 안산화랑유원지 제 3주차장에서 차량행진 출발에 앞서 '진상규명과 책입자처벌"을 외치고 있는 시민들     ⓒ 김상정

 

11, 노랑 차량에서 울려 퍼진 세 번의 경적 소리

오후 1시경, 노란 차량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차량 경적소리가 화랑 유원지 하늘에 울려퍼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차량이 행렬 맨 선두에 서고줄지어 도로에 들어선 차량들은 두 개 코스로 나뉘어져 서울로 향했다. 1코스 차량은 국회를, 2코스 차량은 검찰청을 향했다. 청와대 앞을 거쳐 목적지는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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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분간 국회와 검찰청 건물 주위를 돌던 차량들은 정각 3시가 되자 일제히 경적을 울렸다. 두 번째 경적이다. 차량 안에서는 진상을 규명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크게 퍼져 나왔다. 노란차량 행렬은 애초 청와대 앞을 지나며 경적을 울리려 했으나 경찰에 막혀 청와대 앞에 진입할 수 없었다.
 

 

▲ 11일 오후 4시경,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 주변에서 노란차량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과 피켓을 들고 이들의 행진을 응원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민들     ⓒ 김상정

 

4시경 광화문 광장 주위를 순회하던 차량들은 오후 416, 일제히 마지막 경적을 울렸다. 이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가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가득 메웠다. 차량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은 피켓과 커다란 노란리본을 들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닷새 앞둔 411,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행동하는 공동행동이 끝이 났다.

  

▲ 모든 행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한참동안 노란차량행진에 참가한 차량들과 시민들이 광화문세월호 기억공간에서 피켓시위를 이어갔다.     ⓒ 김상정


 
12, 다시 찾은 사고해역, 그리고 팽목항

유가족을 포함한 100여명의 시민들은 노란차량행진을 마치고 다음날인 412일 새벽 2, 안산가족사무실 앞에 모였다. 이들은 3대의 버스를 타고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목포해경 전용부두에서 해군함정 3015를 타고 3시간 정도 망망대해를 지나 도착한 그 곳. 덩그러니 떠 있는 노란부표 하나가 사고해역임을 알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반경에 선상에서 추모제가 열렸고 갑판 위에서 묵념과 헌화를 했다. 이들은 사고해역을 뒤로하고 목포신항에 돌아와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사고해역을 찾은 유가족들과 시민들, 이들은 갑판 위에서 추모제를 열고 묵념과 헌화를 했다.     ⓒ 이주연

 

사고 해역 앞에 노란 부표가 외롭게 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왜 그날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이 물 속에 수장되게 했는가. 그 날로 다시 돌아가서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참사 6주기가 되도록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게 세상이 이렇게 변했고 너희들 정말 편안하게 잘 가라고 얘길해야 하는데 그런 말을 못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진상규명 우리가 끝까지 같이 해낼게. 그런 다짐을 다시 또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했다.”

 

전교조 416특별위원장이자 416연대 공동상임집행위원장인 이주연 교사의 말이다. 

 

▲ 4월 12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시민들이 인양된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 이주연

 

이주연 교사와 416연대 집행부는 뒤이어 진도 팽목항을 찾아 고 고우재학생의 아버지 고영환씨를 만났다. 고영환씨는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잊지않도록, 추모관이 제대 만들어지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딸과 함께 팽목항을 찾은 시민도 만났다. 이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팽목항이 참사의 현장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대로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 고영환 세월호 희생자 고우재 학생의 아버지는 진도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 세월호 추모관이 제대로 조성되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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