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로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교조는 10월 24일 오후 4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동부 규탄! 법외노조 취소 촉구 교사 결의대회를 연다. 국정 농단, 촛불, 탄핵, 사법농단,…… 격변의 시대, 적폐 청산의 요구 속에서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이다. 6년 전 ‘노조 아님’ 통보 공문으로 시작된 전교조 법외노조의 부당성, 직권취소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살핀다. 편집자주.
고용노동부(노동부)가 해고자 9명과 함께 문제 삼은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규약부칙 5조(해고 조합원의 조합원 자격)이다. 여기에는 ‘부당해고 된 조합원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노동부는 해직 교원에 대해 노동위원회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 등 여부를 묻지 않고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교원노조법 제 2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해고자 조합원 인정 규약, 벌금형
노동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4월 조합원 자격 여부를 포함 전교조 규약 내용 전반을 트집 잡아 시정명령을 내렸다. 전교조는 “1989년 창립이후 22차례에 걸쳐 규약 제·개정을 거쳤고 그때마다 이를 노동부에 신고해왔지만 이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뒤 고용노동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이 합동 브리핑을 진행하는 모습 © 교육희망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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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전교조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노동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규약을 개정했지만 해고 조합원 자격은 유지하기로 결정한다. 노동부는 규약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전교조를 노동조합및노동조합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1심 재판부는 2011년 12월, 2심 재판부는 2012년 7월 전교조와 정진후 당시 전교조 위원장에게 각각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대법원 확정 판결은 2016년 1월).
그리고 2013년 10월 24일 법원이 ‘벌금형’을 확정한 사안에 대해 노동부가 시행령을 앞세워 ‘노조 아님’을 통보한 것이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쟁점은 규약시정이 아닌 법외노조 통보의 정당성 문제”라면서 법이 아닌 시행령에 따른 과도한 조치를 지적했다.
전교조는 “법원의 벌금형 선고도 노동 탄압으로 비난 받을 일인데 동일 사안에 대해 법외노조 통보를 하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만큼 과도하다. 해직 조합원을 빌미로 6만 조합원의 노동 기본권을 통째로 부정하는 폭거를 중단해야한다.”고 비판했다.
해고자 조합원 입법 – 지키지 않은 약속
한국은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승인 이틀 전인 1996년 10월 9일 OECD 사무총장에게 당시 외무부 장관 명의의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한국정부는 결사의 자유나 단체교섭 등의 기본권을 포함하여 현재의 노사관계 법령을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개정할 것을 확약합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한을 받은 OECD 이사회는 ‘한국 정부의 약속을 환영하며 ELSA(고용노동사회위원회)가 한국 노동법의 진전 상황을 모니터링할 것을 지시한다.’는 조건을 달아 한국의 OECD 가입을 최종 승인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됐다. 1년 전인 1998년 11월 열린 노사정위원회 제 10차 상무위원회에서는 ‘실업자 초기업 단위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해직교사도 교원노조 가입이 허용되는 취지로 논의가 진행됐다’는 내용의 기록이 ‘노사정위원회 활동현황’ 문서에 남아있다. 당시 서울신문, 한국일보, 문화일보 등 언론도 ‘해직교사 교원노조 가입 허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 정부는 인권위에 '노조 아님' 통보는 정치적 탄압이라며 긴급 구제 신청을 냈다 © 교육희망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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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사정위원회 합의 가운데 실업자(해고자)의 초기업 노조 가입 허용 관련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고자 조합원 인정 관련 입법 작업이 미뤄지는 사이 2004년 2월 대법원이 ‘초기업 단위 노조의 경우 실업자나 구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를 문제 삼아 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 이후 법원은 초기업 노조의 실업자와 해고자 노조 가입을 문제 삼은 감독관청에 대해서는 패소 결정을 냈다.
2013년 10월 노사정위원회가 만든 ‘합의사항 이행현황’ 문서를 보면 ‘초기업단위 실업자 노조 가입자격 인정’ 항목에 대해 종결처리 했다. 판례에 의해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판단이다. 전교조 역시 지역별,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초기업 단위 노조에 해당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0년 9월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대법원은 초기업 노조의 경우 특정 사용자 종속 관계를 조합원 자격 요건으로 볼 수 없다했고 ILO도 해고자의 조합 활동 금지는 차별 행위의 위험성이 있는 결사의 자유 위반 상황으로 규정했다.”는 말로 권고 이유를 밝혔다.
법외노조 취소 재판에서 노동부 측은 “언제라도 규약을 고쳐 법상 노조로 복귀하면 된다.”, “법률은 ILO와 인권위 권고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을 폈다. 노사 관계 법령을 국제 수준에 부합하게 개정할 것을 약속하고 방기한 행정 기관의 초라한 민낯이다.
법 위의 시행령 – 박근혜 정부 적폐
인권위는 노조법 2조 개정과 함께 정부의 노조설립 취소를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삭제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근거 조항이다. 인권위는 “시정요구 불이행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것은 법에 의해 설립된 노조에 대해 일체의 지위 자체를 원천 부정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면서 권고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도 “노조법에서는 노동조합에 설립신고증이 교부된 이후에는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 노조의 설립을 취소할 어떠한 근거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면서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은 모법의 위임 없이 행정부가 행정입법의 형태로 도입한 것이므로 헌법 37조 2항의 법률의 위임 없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시행령은 법률주의에 반하며 그 자체로 무효”라고 일갈했다.
노조해산명령 조항은 1987년 11월,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조치의 일환으로 여야가 합의해 노조법에서 삭제했다. 하지만 이듬해 노태우 정부는 노조법 시행령에 이 내용을 다시 끼워넣는다. 이 처럼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은 법 위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는 시행령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15년 5월 국회는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에 불일치 할 경우 국회 상임위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법 위의 시행령이라 불리던 정부의 행정입법에 제동을 걸기 위한 조치였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다.
2018년 8월 노동부 장관 직속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역시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관련 노동부 장관에게 ‘직권 취소’와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삭제’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ILO 핵심협약 비준안은 국회에 상정되었다.
하지만 전교조는 2019년 10월 24일에도 청와대 앞에서 법외노조 취소 교사 결의대회를 연다.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 팩스 한 장으로 시작된 법외노조는 만 6년을 맞는 오늘도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