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그래요?] '진짜 남자' 이제 그만

김성애 · 전교조 여성위원장 | 기사입력 2017/07/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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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래요?
[어머 그래요?] '진짜 남자' 이제 그만
김성애 · 전교조 여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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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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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체육복 바지나 속옷 위로 서로 음모 크기를 비교하거나 만지는 등의 행동'은 장난인가? 성폭력인가?
 

남성중학생들의 집단적 성폭력으로 인해 심신의 충격을 받았을 교사들과 친구들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깊은 수치심을 느꼈을 학생들에게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미안함,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여자를 00녀, 성괴(성형괴물)로 비하하고 혐오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집단 자위'는 대전 지역의 어떤 학교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성적 능력'의 자랑,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남자다움으로 인식되는 한국사회에서 남성 청소년들에게 '진짜 남자'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과 소수자를 비하하고 혐오하고 그들과 자신들을 분리하면서 그/녀들을 성적인 수단, 대상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소비하는가에 달려 있다. 성적 대상화는 남성 개인의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남성 집단 속에서 기획되고 실행되며 공유된다. 여성의 치마 속을 훔쳐보고 그녀들의 신체를 수치화하고 등급을 매기고 여성을 생식기로 등치시킨다. 여성, 소수자 당사자들이 이런 행위를 폭력으로 문제 제기하면 '어린 나이', '한 때의 치기어린 행위', '남자들이란 원래 그런거지'. '그 땐 다 그랬어' 라며 남성 사회는 폭력을 변호하고 별거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린다. 더 나아가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남의 앞길을 막는’, '별것도 아닌 것을 문제 삼는', '그런 빌미를 먼저 제공한' 가해자 취급을 한다. 여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폭력의 공유, 폭력의 연대를 통해 그들은 '진짜' 남성이 되는 것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끊임없는 욕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절대로 같아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남성청소년들도 소위 '여자'를 욕망한다. 이때 여자는 무엇인가? 신체이며 생식기이고 배설의 대상이다. 이때 남자는 무엇인가? 신체, 생식기에 배설을 많이 하고 어떤 상황에서 배설할 수 있는 생식기이다. 이렇게 남성중심사회는 여성을 대상으로 그리고 동시에 남성 자신을 오로지 '성적'인 존재로 소외시킨다. 
 

대전 중학생들의 집단 성폭력 행위는 이러한 남성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돼지 발정제, 몰래 혼인 신고, 여성을 섹스 대상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이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법적으로도 전혀 제재 받지 않고 도리어 승승장구하는 남성중심 사회를 남성 청소년들은 그대로 배우면서 '진짜' 남자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의 남성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자도 성희롱, 성폭력을 당한다며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지 않다. 남자, 남성성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은 정체성이 아니라 포지션' 이기 때문이다. 성찰해야 하는 것은 남성 개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남성 집단이 '성차별의 수혜자'이며 성 권력자이고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성적 향유가 가능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그 권력은 약자, 소수자, 여성을 향해 있고 이들에 대한 폭력 속에서 남성 권력은 강화된다. 한국의 남성들은 '진짜 남자'되기를 이제 멈추어야 한다. 대신 남자의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사들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 왜 행위자들은 남학생들이었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성적 능력을 과시하게끔 하였는지에서부터 치마와 바지로 나눠진 교복, 학생들의 성씨는 왜 아버지 성씨여야 하는지, 여기서 남성은 어떤 위치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성'이 사건화 되면 학교와 교육당국은 서둘러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대전교육청 측은 이번 사건을 '성폭력'이 아닌 '영웅심리', '장난'으로 규정하였다. 문제의 해결은 본질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굳이 피해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남성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누구의 감정을 걱정하는가? 누구의 앞날을 걱정하는가? 나이에 상관없이 남성에게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포용적이다.
 

행위자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들, 교사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아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린' 학생들을 '성폭력범'으로 낙인찍자는 의미가 아니다. '어린 남성'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노력 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피해자들이다. 끔찍함과 두려움을 느꼈을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행위자들의 잘못이며 성폭력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바탕에서 '행위 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논의되어야 한다.
 

지난 시간 속에 '학교 성교육'을 돌아본다. 생식기의 차이, 남녀의 건전한 이성교제, 결혼, 임신에서 얼마만큼 진전이 있었는가? '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기울어진 성별의 운동장을 말하지 않고 과연 가능할까? 성차별을 말하지 않는 한, 성별권력을 말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위치를 말하지 않는 한 오늘도 남학생들은 자신의 행위를 '장난'으로 여기며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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