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20년차 교사의 학교에서 살아남기

안순애 · 울산 남외중 | 기사입력 2017/06/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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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20년차 교사의 학교에서 살아남기
안순애 · 울산 남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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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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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발령 때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생활하고 오랜 경력이 쌓이다 보면 수업에 여유가 생기고 업무에도 환하게 눈이 뜨이면서 눈빛만으로도 학생을 제압할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20년 경력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허덕이고 이런저런 행사와 일거리에 떠밀려 하루하루 표류하고 있다. 여기 20년차 교사가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대며 잡고 있는 지푸라기 몇 가닥을 소개한다.

 

우선 좋은 선생님들의 훌륭한 강연이나 연수를 듣는다. 교원평가를 위한 점수 채우기 식 연수 말고 정말 괜찮은 연수를 들어야 한다. 작년에는 4월말 '젊은 국어교사 연수'를 시작으로 여름방학 중 들었던 '배움의 공동체 연수'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9월 '독서교육(너무 감동적이고 배운 것이 많아 온라인 연수도 신청했는데, 이제까지 받은 온라인 연수 중 최고였다)'도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올해 4월에도 '질문 및 토론 수업'을 함께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었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날들이지만 훌륭한 연수를 듣고 나면 참 여운이 깊다. 교육철학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몇 가지 수업 팁도 얻을 수 있어 출근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소모임도 한두 개 정도 가지기를 권한다. 바쁘고 힘든 일상, 소소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물론 친한 몇몇 선생님들과 차를 마시고 정담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주제가 있는 모임이라야 한다. 주제가 없다 보면 자칫 뒷담화나 넋두리로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소모임은 4개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학교 안에서 수업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1시간 정도 수업, 아이들, 학교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월 1회 중학교 국어수업모임과, 배움의 공동체 월례회, 배움의 공동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억지로라도 시간을 만들어서 해야 한다. 이런 모임이 없다고 인생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인생은 원래가 바쁘고 힘든 것이니 어차피 힘들 거라면 한두 개의 모임을 통해 오히려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어떨까. 이것도 연수에서 들은 이야기다.

 

교사가 지치지 않는 수업 팁을 몇 가지 알고 나름대로 활용하면 편하다. 칠판 활용하기, 몽땅 일으켜 세우기, 스스로 질문지 만들고 짝과 바꾸어 풀게 하기, 멜론 음악과 안마봉, 모둠 칠판 활용하기, 삼색 볼펜이나 포스트잇 활용하기 등등.

 

그리고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 나를 소진할 정도의 에너지를 학교에 쏟아 부으면 결국은 지치게 된다. 그러면 학생도 동료도 가족도 모두 행복할 수 없다. 일 말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집에서도 반드시 탈출(집도 일터이므로)하자. 쌍둥이 딸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여름부터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매사 너무나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내가, 주변에 서운함을 느끼며 감정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에 배드민턴을 만났다. 대체로 퇴근이 늦은 편이라 7시 무렵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보지만 체육관에 도착하는 시각은 밤 9시이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 미친 듯이 뛰고 나면 새로운 활력이 솟는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지만, 40대 중반에도 뭔가 새롭게 배우는 것이 즐겁고 머리보다 몸을 쓰는 것이 상쾌하다.

 

2년 전,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많아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고 작년에는 3학년 부장으로 항상 "정신 바짝 차리자" 되뇌며 긴장 속에 허덕거렸다. 그런데 올해 맡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너무나도 착하고 예뻐서 수업이 즐겁다. 교사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아이들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양한 경험으로 수업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화를 내면 무서운 게 아니라 우습다던 나에게도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생겼다. 힘든 학교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계신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다. 나이 먹어 가면서 없던 카리스마도 생길 수 있다는 것! 잘 참고 견디면 이쁜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교사가 지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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