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비정상을 정상으로

최혜영 · 서울 위례별초 | 기사입력 2017/04/28 [13:28]
혁신학교
혁신학교, 비정상을 정상으로
최혜영 · 서울 위례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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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2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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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는다. 교감이나 교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좋은 의자에 앉거나 중앙에 앉지 않고, 교사들과 동등하게 빈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앉는다. 발언 순서도 없고, 의논해야 할 안건의 제한도 없다. 직급이나 경력, 성별이라는 구별 대신 학교 구성원이라는 공통점만으로 회의를 이어간다. 어떤 날은 교육자로서 깊은 성찰을 주는 얘기에 다들 감동을 받으며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러려고 회의를 했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학교에 관한 모든 일에 구성원들의 말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나의' 것, '우리'의 것이 된다.

 

2011년에 서울형 혁신학교인 강명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혁신학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함께 의논하는 교직원회의(다모임, 교사회 등 학교마다 이름은 다양하다)는 혁신학교의 핵심인 것이 분명했다. 그 회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익혔고, 교사가 전문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으며, 동료를 이해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회의에 참여하면서부터 묘하게 학교에 대한 나의 감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외면했을 많은 일들에 관심이 갔고, 좋은 해결책을 찾아보려 궁리하고 손을 들고 의견을 내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내가 학교의 주인 같았고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교실 수업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여기에 오니까 예전처럼 군림하는 꼰대 짓은 못하겠어요.", "예전에 했던 수업들이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왜 그랬나 몰라…", "애들이랑 얘기하면서 수업을 만들어가니까 수업 준비를 꼼꼼히 안 해도 되더라고요. 애들도 오히려 열심히 하고 말이에요.", "아이들이 너무 밝지 않아요?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높은 것 같고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얘기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그러면서 나왔던 말이 '학교가 바뀌니 수업이 바뀐다'였다. 교육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교육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사람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인 학교 시스템의 경험이 통째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교사로서의 태도까지도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수업을 혁신하기 위한 수많은 연수보다 더 강력한 힘이 교직원회의에 있었던 것이다. 민주적인 학교 문화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도전하는 수업을 가능하게 했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담는 일에 충실해지자고 서로 격려했다. 거기서 진행되는 수업 협의회는 더 이상 '교과서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할까?'로 제한되지 않았다.

 

인간은 인식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어떤 피부색이건 상관없이 소중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과거처럼 더 이상 노예로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차별을 겪으며 살았던 과거와 그것을 인식한 이후의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나는 혁신학교에서만 7년째 근무하게 되었다.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는 행복도, 불행도 모두 주인이 되어 경험한다. 이게 정상이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학교로 돌아가 비정상으로 사는 우울함을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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