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자기소개서 대소동

김효곤·서울 둔촌고 | 기사입력 2016/10/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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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자기소개서 대소동
김효곤·서울 둔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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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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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말 방학과 더불어 시작한 '자기소개서 쓰기 대작전'이 추석 연휴를 지나고서야 겨우 막을 내렸다. 정리해 보니 38명이 많게는 9번까지 총 102번을 나와 만났다. 특히 마지막 2주 동안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한두 번 시도해 보다가 포기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만날 때마다 보통 1시간 이상씩 나와 대화하면서 고교생활을 되돌아보았다. 자신의 특별한 점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소서란 곧 '자소설' 아니겠냐"라며 적당히 꾸며 쓰겠다던 놈도 있었으나, 자신의 모자란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오히려 거기서 너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에 이내 진지하게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내려 애쓴다. 나는 곁에서 그들이 진정 말하고 싶긴 한데 입에서만 맴돌 뿐 잘 표현되지 않는 부분들을 글로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애들은 놀라며 말한다.


 "그러니까, 네 생각은 이러이러한 거 아니냐?"


 "아, 맞아요, 제가 바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걸 쓰고 싶었는데 잘 표현을 못하겠던데…"


 이렇게 나와 함께한 아이들은 단 한 문장이라도 같은 자소서가 나올 수 없다. 사실 몇십 년 동안 아이들의 잘 쓴 글, 못 쓴 글을 두루 보아온 나는 척 보기만 해도 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그리고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어차피 자기소개서란 학생부를 뛰어넘을 수 없다. 다만, 교사들이 써놓은 무수한 기록 사이에서 묻혀 버리거나 미처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그러나 행간을 잘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는 장점과 노력을 행여 지나치지 말고 봐주기 바란다는 간절하면서도 소박한 희망을 담을 수 있을 뿐이다.


 대입이 급격히 학생부,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옮아가는 현실에서, 일부 부유층들은 수십 수백만 원을 들여 '자소설'을 쓰기도 하고 이른바 '스펙' 관리에 열을 올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서울 변두리 평범한 인문계 학교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구경하기 힘들다. 대부분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 미약하나마 이런 아이들의 힘이 되어줄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만한 도움조차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의 평가자들이 아이들을 정확히 보는 눈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대학들의 공정한 선발을 기대한다. 대학은 특히 교사나 학교의 사정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없도록 자소서 너머까지도 파악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


 학생부 전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제도의 선악을 따지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한다. 물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리자는 건 결코 아니다. 일개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기껏 이런 정도란 말이다. 눈앞의 아이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사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누구나 다 안다. 99%가 개, 돼지 취급 받는 지금의 비뚤어진 사회구조를 바로잡으면 대입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것을… 대학에 서열이 사라지고, 나아가 대학 안 나와도 대접받으며 산다면 누가 그렇게 대학 가려고 아등바등하겠는가?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어떤 제도도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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