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교실, 없앨 수 없어요”
2.5km길에 담긴 4.16, 그 아픔

최대현 | 기사입력 2015/08/03 [21:53]
특집기획
세월호
“아이들 교실, 없앨 수 없어요”
2.5km길에 담긴 4.16, 그 아픔
[현장] 4.16교사약속지킴이 두 번째 행동 ‘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
최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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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8/0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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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16교사약속지킴이 두 번째 행동 ‘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
▲ 7월30일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제2주차장에 있는 정부합동분향소와 유가족대기실 모습 (위) 4.16교사약속지킴이 두번째 행동인 '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에 참여한 교사들인 안산단원고 2학년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최대현
 
선생님들은 살가웠다. 생각지도 못한 참사로 주인 잃은 책상을 어루만졌다. 학생들의 체온을 조금이나마 느끼려고 의자에도 앉았다. 자신이 가르치고 부대낀 제자가 아니었어도, 모두 자신의 제자로 여기는 듯 했다. 그리고 눈길이 머무는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방명록에서 처음 만난 제자 아닌 제자에게 말을 걸었다.
 
수경학생에게
인연이라 생각하며 앉았습니다. 오랜 동안 주인의 온기를 기다렸던 책상과 의자였겠죠. 주인은 아니나 객이 앉아 그들을 위로해 봅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계단에서,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수경학생이 거닐고 뛰었을 텐데… 미안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기억합니다.
 
가현아, 이제와 봐서 너무 미안해. 억울하게 가게해서 미안해. 얼마나 무서웠니. 샘이 기도할게. 하늘나라에서는 무섭지 말고 친구들이랑 웃고만 있어야 해. 여기서 싸울게. 다시는 가현이처럼 가는 아이가 없도록. 
 
4.16세월호 참사 471일째가 되는 7월30일 오후 2시55분, 전국에서 모인 교사 50여명이 경기 안산단원고 2학년1반(명예 3학년1반) 교실을 들어섰다.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화분과 과자, 액자, 학생들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글귀가 맨 먼저 교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2014년 4월에 멈춘, 달력과 가정통신문, 식단표도 이어서 눈길을 잡았다. 단원고 학생 250명(실종 4명 포함)과 교사 11명이 희생된 참사를 교실에서 온전히 느꼈다. 한 교사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고, 또 다른 교사는 한참 동안 멍하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곽은주 교사(인천 관교중)는 “참사 뒤 허무함에 아무것도 못했다. 교실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정말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오면 누구나 그럴 것 같다”고 했다.
 
▲ 교사들이 생존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3학년 4개반 교실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 최대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4.16교사약속지킴이인 이들은 지난 6월 첫 번째 행동에 이어 두 번째로 ‘4.16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를 진행했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학교 인근인 안산 고잔동에 위치한 4.16기억전시관을 출발해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하교하면서, 놀면서, 걷고 뛰었을 길을 걸어 단원고 교실과 교무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는 물론 일반인 희생자, 실종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정부 합동분향소까지 2.5km를 도보로 둘러보는 일정이다.
 
1반부터 한 개 반씩 둘러볼수록 교사들의 눈은 더욱 빨개졌다. 자신이 몸담은 학교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겹쳐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후 3시에는 빈 교실이었지만 각 교실에 달린 스피커에서 수업 종소리가 울렸다. 
 
붉어진 눈시울, “교실 치우려 했다”는 교육청에 분노
 
6반 교실에서 “민원에 따라 경기교육청이 교실을 치우려고 했다”고 길 안내자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이 입을 떼자, 교사들은 분노하기도 했다. “교육청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이 교실은 지켜져야 할 곳이예요.” 한 교사가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유가족과 형제자매, 생존학생이 유일하게 아이들과 만나는 곳으로 그리울 때면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본관 3층에는 살아 돌아온 학생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학생 80여명을 위한 교실 4곳도 함께 있다. '명예'가 아닌 온전한 3학년1반~4반이다. 여전히 친구들끼리 지내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이 들려준 생존학생들의 고통은 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 교사들이 4.16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교사들의 2학년 교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 최대현
 
“어렵게 살아온 학생들에게 불량학생이라니, 너희만 살아왔냐느니 하는 말을 던집니다. 그 모든 것을 견디지만, 자기의 고통을 얘기하지 않아요.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겠죠. 생존학생들은 적게는 1개, 많게는 8개의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3명이 자살 시도 했어요. 다행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3분의1은 유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답니다. 세월호 시행령에 따르면 생존자들에 대한 심리 치료는 5년까지만 가능합니다.”
 
학교본관 2층에 자리한 2학년 교무실도 지난 해 4월 그대로였다. 학사일정에는 4월15일(화)~18일(금)까지 수학여행이 명시돼 있다. 2학년5반 담임인 고 이해봉 교사 책상에는 ‘전교조 경기지부’가 적힌 컴퓨터 마우스 패드가 여전히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교사가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듯했다.
 
이 교사 뒤편에는 고창석 교사의 책상이 있다. 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로 현재까지 생사를 알 수가 없다. 길주연 교사(서울 자운고)는 고 교사의 개인 방명록에 “선생님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돌아와 주세요”라는 바람을 남겼다.
 
단원고에서 1시간20여분을 머문 뒤, 교문을 나선 송미숙 교사(서울 문성초)는 “쉬는 시간에 시끄러웠을 복도, 교실과 예쁜 교정에 꿈을 키웠을 아이들이 떠올랐다”면서 “아이들의 교실을 보전해서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에 확신이 든다”고 밝혔다.
 
생존학생들의 고통 그리고... 2014년 4월에 멈춘 동료교사 교무실
 
교사들은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를 향했다. 화랑저수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틈틈이 노란 리본을 난간에 매달았다. 아직도 실종 상태인 단원고 학생 4명과 교사 2명 그리고 일반인 3명이 꼭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20여분을 걸어 도착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교사들은 교실의 주인인 학생 250명의 얼굴과 마주했다. 또 한 번 울분을 삼켰다. 한 교사는 “내가 생전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 영정 앞에 설 줄 몰랐다”며 “어찌 잊을 수가 있겠나”라고 했다.
 
▲ 교사들이 정부합동분향소 한 켠에 마련된 '하늘로 간 수학여행' 사진전을 보고 있다.     © 최대현

분향소 한 켠에 마련된 ‘하늘로 간 수학여행’ 사진전을 보면서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 사고가 아닌 참사임을 되뇌었다. 이 사진전은 희생 또는 생존학생들이 남긴 사진과 동영상 갈무리 화면으로 꾸며졌다. 김 사무국장은 “국민들이 본 것은 사고일 수도 있지만, 가족들이 본 것은 살인이었다. 이 차이는 굉장하다. 살인이기에 살인자를 찾아내서 처벌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기억하는 투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 시작 장소인 기억전시관에 희생자 304명을 기리는 ‘기억함’에 개인기록과 살아있을 때 아끼던 물건, 편지, 사진 등을 모으는 이유였다.
 
오후 4시40분 교사들은 컨테이너 건물로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서 유가족들과 마주 앉았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작은 일을 하자고 입을 모았다.
 
박영환 교사(충남 당진서정초)는 “꾸준히 노란리본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부족하다고 느꼈다. 세월호 플래시몹 등으로 현장에 잊혀지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재춘 전교조 경기지부 안산지회장은 “더 앞장서서 투쟁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오늘을 계기로 다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도록 안산지회부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학교서 세월호 참사 배웠다고 하길, 자유롭게 말하는 장 만들어 주길”
 
“엄마와 함께 왔다”는 이선호 학생(충북 상당고)은 “먼 훗날 내 자식이 세월호 참사가 뭐야라고 묻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렇게 배웠어라고 얘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교사들이 유가족대기실에서 유가족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최대현
 
아프지만, 의미있는 얘기도 나왔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살 사회니 직접 만들어봐’라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죄송하지만, 우리 아이들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른다”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설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달라.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당부했다.
 
2학년6반 신호성 어머니 강부자 씨는 “호성이가 가고나서 학교에 가니, 이런 곳에서 교육을 시켰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불쌍했다.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바보로 만들었다고 느꼈다”며 “아이들을 기계로 키우지 말아 달라. 다시 대한민국의 새로운 교육을 부탁한다. 잊지 말고 행동해 달라”고 말했다.
 
‘기억과 약속의 길’은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반나절 동안 함께 걷는다. 방학 중인 오는 15일까지는 평일에도 오후 2시에 출발한다. '걷기'에 참여를 원하는 전교조 지부나 지회, 분회 또는 조합원들은 4.16특별위원회(02-2670-9452)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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